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만의 소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도, 얼굴은 같지만 행동과 생각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모든 사람의 염색체를 각각 다르게 해 놓으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의 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각각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독특하게 창조하여,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도 너무나 다양한 성격을 가진 성도들이 모여 있습니다. 자기 또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근히 하려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나이 드신 분들과 함께 교제하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되는데 빌려간 돈은 단 1불이라도 안 갚으면 용서가 안 되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다른 것은 엉망이면서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 한 가지를 자랑으로 삼는 분이 계신데, 이런 분은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분이 계시면 다른 점이 아무리 좋아도 부정적으로 평가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자기만의 관점을 고수하게 되면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는가, 주위에 친구들은 자꾸 사라지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외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친구가 떠나고 외로워 지더라도 지켜야 할 올바른 가치관을 지키고 살면 괜찮지만, 많은 경우는 한쪽으로 치우친 가치관을 가진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할 때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편에서 일방적으로 판단치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고 서로 다른 차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의 청년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는, 크리스천으로서 지켜야 할 양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고집해야 하지만, 그 외에 세대 차에 기인한 것에 대하여, 계속 잔소리를 하면 그들과의 관계는 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옷 입는 것, 화장하는 것, 머리 스타일, 예절, 절약하는 정신, 이런 문제로 잔소리를 하면 둘 사이에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듭니다.
젊은 사람들과 친근히 지내고 잘 어울리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넘어가고 차이를 포용할 줄 아는 분들입니다. 이에 반해, 외롭게 사는 분들을 보면 상대와 관점의 차이를 조절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양보하지 못하고, 자기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는 분은 결국 경직된 관계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미국에 온 시기도 다르고, 다양한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환경 가운데서 이웃의 관점을 나의 관점 보다 우선시 하여 섬세하게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