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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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 속아주고, 알면서 손해봅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계산에 철저하여 정확을 요하고 오차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관계 되는 일에 대해 철저히 계산합니다. 그 결과 자기 권리를 주장할 줄도 모르고, 차려주는 밥도 못 찾아먹는 사람을 바보 취급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가 남에게 양보만 하다가 권리를 잃을 때 속이 상하여‘너 바보니?’하 분노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렇게 자기 계산이 빠른 사람보다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찾으시는 사람은 속는 사람이 아니라 속아주는 사람, 즉 한 영혼을 세우기 위해 알면서 속아주고, 알면서 손해보는 바보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가능하면 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 해주고, 속옷을 원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주님은 가르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본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을 못박았던 자들은 자신이 가장 의롭고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낮추시고 정말‘바보처럼’죽어 주신 것은, 우리를 높여주시고 의롭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게 만드셨습니다(2:9-11).

    무조건 속아주고 손해봐라는 것은 아니고. 지적인 사고를 전혀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 가르침 속에 있는 주님의 희생정신을 본받자는 것인데 그것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지성을 가졌지만, 한 영혼을 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해 바보처럼 살았을 때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바울처럼 똑똑한 사람이 자기를 낮추었을 때  영혼을 얻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반면에 자기를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사실은 큰 착각 속에 살며, 그 사람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비록 많이 안다고 해도 그 지식과 지혜가 그렇게 오래 가지도 않고, 그것 가지고는 주위를 밝힐 수 없습니다. 교회는 똑똑한 사람이 행세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보’같이 알면서 속아주고, 알면서 손해보는 분들이 존경받고 인정받는 곳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아직도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나 나의‘잘남’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면 아직 주님의 일을 할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종의 형체’를 가지셨던 주님을 닮는 어수룩하고 바보처럼 보이는 분이 많을 때, 분명히 주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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