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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라는 욕구에 대한 제동장치

사자는 배고플때 먹을 만큼 만 사냥합니다. 쌓아 놓기 위해서 사냥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쌓아 놓으려고 더 많이 걱정하고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더' 라는 욕구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곤을 모르고 뜁니다. 이것이 나쁜것 만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문명이 발전하고, 성취욕을 누리며, 살맛이 더욱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뉴스를 장식하는 부끄러운 일들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대부분 탐욕이 그 출발입니다. 유명한 문호 단테는 말하기를 탐욕이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했으며, 돈을 우상으로 여기는 탐욕은 사람과 나라를 망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한 말은 진리로 여겨집니다.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은 없다."

좀 더 갖고 싶은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대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것은 거기에 적절한 제동장치가 있어서 적정선에서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자제력이 없는 욕구는 무서운 악입니다. '좀 더' 라는 마음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반듯이 탐욕이됩니다. 그리고 탐욕화된 그것은 반드시 우상이 되어 파멸로 몰고 가기 때문에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톱이 자라면 항상 적당하게 깎아 줍니다. 자라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또 그대로 내버려두어 방치하면 보기 흉하고, 깍을 때 너무 많이 깍으면 한동안 아픈 통증을 느낍니다. 그 적정선을 알고 짜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음에 있는 '좀 더' 라는 욕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적절히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매사에 나와 관계맺는 모든 일이 적정선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그 적정선을 넘을 때 브레이크를 걸수 있는 능력을 평소에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나오는 10계명중, 마지막에 탐심에 대해 명령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 10번째 계명은 구체적 행동을 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라는 계명은 구체적으로 행치 말 것을 명했지만, 이것들은 행동으로 그 죄를 범치 않는 한 그 계명을 지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행동이 아닌, *마음 가짐을 지적합니다. 마음으로 욕심을 내고 그것이 탐욕화되면 그 자체가 죄입니다. 따라서 탐욕은 절대로 용납하거나 방치해서는 안되며 적정선에서 그 욕구를 자제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 지족하여 좀 더에 대해 적정선에서 브레이크르르 걸수 있는 능력을 우리 모두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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