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코너

2017.01.06 13:01

자기 노출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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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노출 어디까지

      12월에 성도님 가정을 심방할 때,  제가 평소에 몰랐던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오픈 해 주셔서,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또 지난 1231일 저녁 송년 친교 시간에 지난 1년의 삶을 회고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형편을 노출하여 들려 주셨습니다. 이런 나눔의 시간을 가질 때,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자기를 어디까지 노출해야 하는가?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자신을 노출하는 범위는 상대와 관계의 깊이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이며, 서로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자신의 속사정을 노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예를 들어봅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적나라한 과거와 어떤 죄인인지 자세히 노출했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해석의 차이가 있지만 로마서 7장은 바울이 내적으로 겪는 심각한 죄와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나를 본받아라 말할 때에는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본받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려고 애쓰고 몸부림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본받으려면 내면의 갈등과 자신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로마서 7장의 갈등이 없으면, 8장의 환희를 맛볼 수 없습니다.

      성도간에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출과 깊은 소통이 필수입니다. 이번 심방때 제가 각 가정마다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목장에서 나눈 이야기는 목장 식구들만 알고 밖으로 퍼져가서는 안된다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노출의 범위가 점점 확대 되어도 문제가 일어나지 안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노출 할 때에는 내용이나 수위를 잘 조절하며 취사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담 만을 말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갈등과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합니다.

      일반 세상에서 참된 사귐이 힘든 이유는 자신을 감추려 하고 자신의 좋은 면만 보이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감추는 이유는 상처를 치부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귐, 참된 공동체를 원한다면 누구인가 상처받고 이용당할 각오를 하고서라도 자신을 노출시켜야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누구인가 다른 사람이 용기를 얻어 자신을 또 노출시킬 것입니다. 진정한 노출이 있는 곳에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서로 소통함으로 튼튼한 관계가 맺어집니다. 이런 진실된 소통의 자리가 귀한 것을 깨닫는 분이 하나 둘 생겨날 때에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참된 공동체가 형성되고 참된 교제(koinonia)가 가능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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